잘 알려지지 않은 한국 근대사

불령선인(不逞鮮人) 감시 문서 대량 작성 — 기록된 감시, 망각된 공포

skillplanner80 2025. 8. 2. 06:25

 불령선인(不逞鮮人) 감시 문서 대량 작성 — 기록된 감시, 망각된 공포


1. 서론 — ‘불령선인’이란 누구였는가?

일제강점기 조선에서 ‘불령선인(不逞鮮人)’이라는 말은
단순한 ‘불순분자’가 아니었다.
이 용어는 조선인을 통제하고 감시하기 위해 만들어진 낙인,
즉 일제가 만든 공포의 이름표였다.

일제는 독립운동가나 항일 인사뿐 아니라
조선 민중 누구에게나 이 꼬리표를 달 수 있었다.
학교 교사, 상점 주인, 종교인, 여학생, 심지어
말 한마디 실수한 이들까지 감시 대상이 됐다.

그 감시의 결과는
수십만 장의 문서와 기록으로 남았고,
그 기록은 지금도 일본 국가기관에 보관 중이다.

불령선인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는 일본인

 


2. ‘불령선인’이란 용어의 기원과 의미

‘불령(不逞)’은 문자 그대로 ‘말을 듣지 않는, 불순한’이라는 의미다.
‘선인(鮮人)’은 조선인을 낮춰 부른 단어다.

따라서 ‘불령선인’은
‘불온하고 통제되지 않는 조선인’이라는 의미다.

이 용어는 1910년대부터 일제 헌병·경찰 체계 속에서
공식적인 감시 용어로 정착되며,
모든 항일운동가와 의심스러운 인물들에게 부여된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 적용 범위는 점점 확대되어
일본어 능력이 부족한 자, 불평이 많은 자, 종교적 발언을 한 자
광범위한 일반인들까지 포함하게 된다.


3. 감시 문서의 양과 범위 — ‘눈과 귀의 제국’

일제는 전국 각지에서 작성된
‘불령선인 감시 문서’를 체계적으로 관리했다.

  • 총 감시 문서 약 35만 건 이상
  • 지역별 경찰서, 헌병대, 동사무소까지 참여
  • 매주, 매월, 분기별 보고 체계 존재
  • 대다수가 정식 재판 없이 영구보관 기록

기록된 항목에는

  • 이름, 직업, 나이
  • 주거 이동 경로
  • 대화 내용
  • 가족 성향
  • 종교, 정치 발언 이력
  • 연락한 사람 목록
    까지 포함되었고,
    때로는 이웃의 밀고로 만들어진 문서도 수없이 많았다.

4. 일상의 감시화 — ‘불령선인이 될 수도 있는’ 사회

이 시기 조선인은
감시와 통제 속에서 일상을 살아야 했다.

  • 신문 구독 이력 → 정치성향 추정
  • 편지 내용 → 불온 여부 판별
  • 교육 참여 여부 → 사상 평가
  • 교회, 사찰 출입 → 좌익·우익 의심
  • 외국인 접촉 → 간첩 혐의

가장 심각한 점은
이러한 감시 대상이 범죄자나 운동가가 아닌 일반 민중이었다는 것이다.
사실상, 누구나 불령선인이 될 수 있는 체제
조선을 뒤덮고 있었던 셈이다.


5. 여성과 학생도 감시 대상 — 성별과 나이의 구분 없음

불령선인 감시 문서에는

  • 여성 교사
  • 여학생
  • 야학 참여 여성
  • 종교활동을 하는 자매들
    등에 대한 기록도 포함되었다.

이들에겐
‘풍기 문란’, ‘모범적이지 않음’, ‘비밀 독서 모임 참여’
등의 이유로 불령 혐의가 씌워졌다.

여학생이 이육사의 시를 소지했다는 이유만으로
조사 대상이 되거나,
가정주부가 교회 설교에 감동해 눈물 흘렸다는 이유로
‘사상 의심자’로 등록된 사례도 있다.


6. 기록은 계속된다 — 해방 이후까지 이어진 감시

놀랍게도
불령선인 문서 작성은
광복 직전인 1945년 8월까지도 이어졌고,
해방 후에도 미군정이 이 문서를 일부 활용했다는 주장도 있다.

실제로 일부 문서는
미군 CIC 정보기관에 넘겨졌고,
냉전 체제 속에서
‘좌익 사상 위험자 분류’에 활용되었다는 정황도 있다.

그 결과,
일제의 감시 문서가
이후 한국 사회의 ‘사상 경계선’을 만들고 유지하는 데까지 영향을 미친 셈이다.


7. 역사적 복권은 되었는가?

지금도 일본 국가문서관과 외무성, 방위성 기록보관소에는
‘불령선인 문서’ 수만 건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 문서에 기록된 이름의 주인공 중
대부분은 단 한 줄의 기록에도 복권되지 못한 채
역사 속에 사라졌다.

그들 중 일부는 독립운동가였고,
일부는 단지 불평을 말했으며,
어떤 이는 평범한 농부였고,
또 어떤 이는 ‘민족노래’를 읊었을 뿐이었다.

우리는
그들을 이름 없이 잊었지만,
그들은 이미 문서 속에서 식별번호로 살아 있었다.


8. 마무리 — 기록은 지배의 또 다른 이름

감시는 총을 들지 않는다.
하지만 말보다 빠르게
사람을 고립시키고, 사라지게 만든다.

‘불령선인 감시 문서’는
단지 일제의 통제 수단이 아니라,
식민지 조선을 감싸고 있던 두려움의 실체였다.

그리고 그 문서는 지금도
누가 민족의 적이었는지,
누가 단지 말했을 뿐인지

가려내지 못한 채
침묵 속에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