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진우 열사 투신 자결 사건 (1933) – 일본 유학 중 조국을 위해 목숨을 던진 청년
장진우 열사 투신 자결 사건 (1933) – 일본 유학 중 조국을 위해 목숨을 던진 청년
역사는 늘 거대한 물결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때론 단 한 사람의 외침과 희생이 민족의식에 불을 지피고 시대를 바꾸는 씨앗이 되기도 합니다. 1933년 일본 유학 중 항일정신을 몸으로 실천하며 투신 자결한 청년, 장진우 열사의 이야기는 바로 그런 역사적 장면 중 하나입니다.
비록 대규모 시위나 전투는 아니었지만, 그의 행동은 당시 조선 청년 사회에 커다란 충격과 감동을 안겨주었고, 조국을 향한 지식인의 책임과 실천이 무엇인지를 다시금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장진우 열사의 삶과 죽음, 시대적 배경, 사건의 의미를 깊이 있게 되짚어보겠습니다.
1. 시대 배경: 일본 유학과 조선 청년들
1930년대 초는 일본 제국주의가 조선을 완전히 지배하고 동아시아 전역으로 팽창하던 시기였습니다.
조선의 젊은 지식인들은 일본 유학을 통해 신지식과 사상을 받아들이면서도, 식민 지배에 대한 저항과 갈등을 내면에 안고 있었습니다.
- 일본 내 조선 유학생 수는 1930년대 초 5,000명을 넘었고,
- 이들 중 일부는 조선의 독립과 해방을 위한 사상운동과 비밀결사 활동에 참여했습니다.
- 동시에 일본 내에서는 치안유지법이 강화되어, 조선 유학생들의 모든 활동이 철저히 감시당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장진우라는 이름 없는 청년은 자신의 방식으로 역사의 한복판에 뛰어듭니다.
2. 장진우 열사, 누구인가?
장진우(張振宇)는 경상북도 출신의 평범한 청년으로, 조선에서 고등보통학교를 마친 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납니다.
그는 도쿄 소재의 사립 전문학교에서 법률과 경제학을 공부하며, 조선의 현실과 식민 지배 구조를 비판적으로 인식하게 됩니다.
당시 유학생 사회는 겉으로는 조용했지만, 비밀리에 항일 서클과 독서 모임, 민족운동 관련 토론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장진우 역시 이러한 분위기에 깊게 동화되어 갔고, 점점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3. 사건의 전개: 한 청년의 결단
1933년 11월 5일. 도쿄의 번화가 중심인 우에노(上野)역 근처 육교 위에서 한 조선인 청년이 사람들 앞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외칩니다.
“조선은 죽어가고 있다.
우리는 깨어야 한다.
조선 청년들이여, 역사의 수치를 잊지 말라!”
이 외침이 끝나기도 전에 그는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육교에서 몸을 던져 투신자살을 시도합니다.
현장에서 곧바로 병원으로 이송되었지만, 중상을 입고 며칠 후 사망합니다.
현지 경찰은 그를 신원 미상 조선인으로 기록했지만, 그가 남긴 가방 안 유서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적혀 있었습니다.
“내 한 몸은 사라지지만, 조선의 자유는 사라지지 않으리라.”
이 유서를 통해 그의 이름이 밝혀졌고, 비록 소리 없는 저항이었지만, 이는 곧 일본 유학생 사회와 조선 청년층에 큰 충격과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4. 일본 경찰과 언론의 대응
당시 일본 당국은 이 사건을 철저히 축소 보도하고자 했습니다.
- 신문에는 "정신 이상 조선 유학생의 자살"이라는 단 몇 줄의 보도가 실렸고,
- 일본 경찰은 유서를 압수해 유학생 사회로 확산되지 못하게 차단했습니다.
그러나 입소문은 막을 수 없었습니다.
도쿄, 오사카, 교토 등지에 퍼져 있던 조선 유학생들 사이에서는 장진우의 행적과 유서 내용이 필사로 공유되었고,
몇몇 학생들은 그의 죽음을 기리며 비밀 추도회를 열기도 했습니다.
5. 조선 내 반응과 기록의 단절
문제는 조선 본토였습니다.
당시 조선 총독부는 해당 사건을 전혀 보도하지 않았고, 유서를 포함한 관련 자료를 모두 반출 및 검열했습니다.
장진우 열사의 이름은 그 이후로도 공식적인 역사 기록에서 배제되었고,
단지 몇몇 독립운동 회고록이나 일본 유학생 출신 인사들의 구술기록 속에서만 간간이 언급되었을 뿐입니다.
- 이는 곧 일제강점기 수많은 무명의 청년들이 어떤 방식으로 저항했는지를 보여주는 ‘잊힌 역사’의 한 사례입니다.
6. 지금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이유
장진우 열사의 투신은 단지 감정적 저항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생명을 던짐으로써, 침묵과 타협 속에 무기력해진 조선 청년들에게 강력한 각성을 요청했던 것입니다.
그의 이름이 남긴 메시지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 지식인의 책임
- 행동하는 양심
- 공공을 위한 자기희생
오늘날, 우리는 장진우라는 청년을 다시 불러내야 합니다.
그가 남긴 유서 속 문장 하나하나가 다시금 우리의 정신을 일깨워야 합니다.
그의 삶은 실패한 인생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살아 있는 이유이자, 기억해야 할 빛나는 증언입니다.
📌 마무리하며
역사는 종종 거대한 이름에만 주목하지만, 진짜 역사는 이름 없는 수많은 사람들의 의지와 실천으로 움직입니다.
장진우 열사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
조국이 위험할 때 나는 어떤 결정을 할 수 있는가?”
오늘날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자유는, 그의 투신 같은 결단들이 쌓여 만들어진 유산입니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일은 그를 기억하고, 그의 뜻을 우리 삶 속에 다시 되새기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