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신안 어민 해상시위 사건 (1936)— 바다 위에서 울려 퍼진 항일의 함성, 일본 어업 독점에 맞선 어민들의 투쟁
전남 신안 어민 해상시위 사건 (1936)
— 바다 위에서 울려 퍼진 항일의 함성, 일본 어업 독점에 맞선 어민들의 투쟁
1. 사건 개요
1936년 전라남도 신안군 일대에서 벌어진 어민 해상시위는 일제강점기 조선 어민들이 바다에서 조직적으로 벌인 대규모 항일 투쟁이었다. 당시 일본인 어업회사가 남획을 일삼으며 어장을 독점했고, 조선인 어민들에게 불리한 가격으로 어획물을 강제로 매입하는 불공정 거래를 강요했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일본 어업회사의 행위가 단순한 상업적 횡포가 아니라 일본 제국의 식민지 경제 수탈 구조 속에서 철저히 보호받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조선총독부는 일본인의 어업권을 보장하고, 어민들의 저항을 ‘불온행위’로 규정하여 경찰력을 동원해 탄압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신안군의 어민들은 오랜 기간 누적된 분노를 바탕으로 수십 척의 배를 동원한 해상시위를 감행했다. 그들은 배 위에 태극기를 걸고, “바다를 돌려달라!”, “일본인 독점 반대!”라는 구호를 외쳤다. 이는 단순한 경제적 권리 요구를 넘어, 조선인의 생존권과 민족적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투쟁이었다.
2. 시대적 배경
2-1. 일제강점기의 어업 수탈 구조
일제는 조선을 식민지로 삼은 직후부터 어업을 전략 산업으로 간주했다. 특히 서해안과 남해안은 해양자원이 풍부해 일본 어업회사들이 대거 진출했다. 1920년대 중반 이후 일본인들은 최신 어업 장비와 대형 어선을 이용해 조선 연안의 수산물을 대량 채취했고, 이를 일본 본토로 실어 날랐다.
조선인 어민들은 전통적인 소형 어선을 사용했기에 경쟁 자체가 불가능했다. 일본 어업회사는 이들을 일본 자본이 운영하는 **‘공동판매소’**에 묶어두고, 어획물 가격을 임의로 낮게 책정했다. 어민들은 마치 소작농이 지주에게 곡식을 바치듯, 바다에서 잡은 고기를 헐값에 넘겨야 했다.
2-2. 남획과 생태계 파괴
일본 어선들은 대규모 저인망 어법을 사용해 물고기의 산란기조차 가리지 않고 조업을 강행했다. 그 결과 연안 어족 자원이 급격히 고갈됐고, 어민들의 수입은 더욱 줄어들었다. 바다는 더 이상 조선인들에게 풍요의 터전이 아니라, 빈 그물과 빚만 남기는 절망의 공간이 되어갔다.
3. 사건 전개
3-1. 분노의 축적
1930년대 초반부터 신안군 어민들은 일본 어업회사의 횡포를 막기 위해 수차례 항의했다. 그러나 조선총독부는 이를 무시했을 뿐 아니라, 항의 주동자를 검거하거나 벌금을 부과했다. 특히 1935년 겨울, 일본 어업회사가 어민들의 어획물 단가를 30% 이상 낮추자 분노가 폭발했다.
3-2. 해상시위의 준비
1936년 3월 초, 신안군 지도읍과 암태도, 자은도, 임자도 등지의 어민 대표들이 모여 비밀리에 회의를 열었다. 이들은 일본 어업회사의 독점 철폐와 공정한 거래 보장을 요구하기 위해 대규모 해상시위를 벌이기로 결정했다.
회의는 밤에 몰래 진행됐고, 참가자들은 입에서 입으로 소식을 전했다. 시위 당일에는 각 마을에서 배를 몰고 집결할 것을 약속했다.
3-3. 바다 위의 함성
1936년 3월 15일, 신안군 연안에는 약 50여 척의 어선이 모였다. 배마다 깃발이 펄럭였고, 일부는 태극기를 걸었다. 어민들은 북과 징을 치며 구호를 외쳤다.
“바다는 우리 삶이다!”
“일본인 독점 반대!”
“공정 거래 보장하라!”
이날 시위는 평화적으로 시작됐지만, 일본 경찰과 헌병이 배를 가로막으면서 충돌이 벌어졌다. 헌병들은 배에 올라타 시위 주동자들을 체포했고, 일부 어선은 충돌 과정에서 파손되거나 전복될 뻔했다.
4. 일제의 탄압
시위 직후 조선총독부 경찰은 주동자 12명과 참가자 30여 명을 체포했다. 그들에게 적용된 죄목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과 ‘치안유지법 위반’이었다. 재판 과정에서 일본 검사들은 시위를 ‘경제적 불만을 가장한 불온한 항일 활동’이라고 규정했다.
피체된 어민들은 대부분 징역형이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으며, 일부는 어업 허가를 박탈당해 생계가 막막해졌다. 마을 전체가 경찰의 감시를 받았고, 시위 이후에도 일본 어업회사의 횡포는 계속됐다.
5. 사건의 의의
- 해상에서 벌어진 항일 운동
- 대부분의 항일 운동이 육지에서 일어났던 것과 달리, 신안 어민 해상시위는 바다를 무대로 한 투쟁이었다.
- 민족경제 수호 운동의 일환
- 어민들의 요구는 단순한 생계 문제를 넘어, 조선인의 경제권과 바다를 지키려는 민족경제 수호 운동이었다.
- 지역 연대의 힘
- 신안군 각 섬의 어민들이 하나로 뭉쳐 행동했다는 점에서, 지역 간 연대의 성공적인 사례로 평가된다.
6. 오늘날의 교훈
신안 해상시위는 단순히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시사점을 준다. 해양 자원 관리와 공정한 어업 거래, 그리고 약소 집단의 권익 보호라는 문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는 사람들의 외침은 시대를 넘어 이어져야 하며, 이를 지키기 위한 제도와 연대가 필요하다.
7. 결론
1936년 전남 신안 어민 해상시위 사건은 바다 위에서 울린 항일의 함성이었다. 일제의 경제적 착취와 불공정 거래에 맞서, 생존권과 민족적 자존심을 지키려 했던 어민들의 용기 있는 투쟁은 지금도 우리의 기억 속에 살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