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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남도 원산 노동야학 폐쇄 사건 (1934) — 어둠 속에서 빛을 잃은 노동자들의 배움터

skillplanner80 2025. 8. 14. 07:39

함경남도 원산 노동야학 폐쇄 사건 (1934) — 어둠 속에서 빛을 잃은 노동자들의 배움터

1. 서론 — 한 줄기 빛이 꺼지던 날

1934년, 함경남도 원산.
당시 원산은 항구도시이자 철도 요충지로, 수많은 노동자들이 항만 하역, 철도, 제조업 현장에서 일하며 생계를 이어갔습니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은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한 채 어린 나이부터 노동 현장에 투입되었고, 글을 읽거나 계산하는 법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조선인 지식인과 진보적 기독교계 인사들이 뜻을 모아 노동야학을 설립했고, 이는 단순한 문해 교육을 넘어 민족의식 고취와 사회적 각성의 장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일제는 이를 곱게 보지 않았습니다. 노동야학이 단순한 교육기관을 넘어 반일 사상 전파의 온상이라고 규정하고, 결국 1934년 강제 폐쇄를 단행합니다. 이 과정에서 조선인 교사 다수가 ‘사상범’으로 몰려 체포되었고, 원산 지역 노동운동의 중요한 기반이 무너졌습니다.

함경남도 원산 노동야학 폐쇄 사건 (1934)


2. 시대적 배경 — 왜 노동야학이 필요했는가

(1) 원산의 산업 구조

원산은 1930년대 들어 일본 제국의 동북아 거점 항구로 성장했습니다. 무역, 수산물 가공, 철도 운송, 경공업이 발달하면서 대규모 노동자 계층이 형성되었고, 이들 중 상당수는 농촌에서 일자리를 찾아 상경한 청·장년층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일본인 관리자와 조선인 노동자라는 식민지 계급구조 속에서 극심한 차별을 받았습니다.

  • 임금 격차 : 동일한 작업을 해도 조선인 노동자는 일본인의 절반 수준의 임금을 받음.
  • 승진 제한 : 숙련공이 되어도 관리직으로 승진 불가.
  • 열악한 주거환경 : 항만 주변의 판잣집과 비위생적 숙소.

(2) 교육 사각지대

일제 강점기 조선인에게 허락된 교육은 매우 제한적이었으며, 실업·문해 교육은 더욱 부족했습니다.
원산의 노동야학은 이 공백을 메우기 위해 설립되었으며, 수업 내용은 기초 문해 교육, 산술, 근대 사회학 개론, 노동법과 권리 등 실생활과 밀접하게 연관된 주제로 구성되었습니다.


3. 사건 전개

(1) 노동야학의 성장

원산 노동야학은 설립 초기에는 일본 경찰의 직접적인 간섭 없이 운영되었습니다.
저녁 7시부터 10시까지 진행되는 수업에는 항만 하역 노동자, 철도공, 어업 종사자 등 다양한 직종의 사람들이 참여했습니다.
교사들은 대부분 원산 출신의 청년 지식인과, 기독교계 인사들이었고, 교재는 직접 손으로 필사하거나 주변에서 기증받았습니다.

(2) 일제의 경계심

1933년 이후 만주사변의 여파로 조선 내 사회통제가 강화되면서, 일제 경찰은 원산 노동야학을 사상범 단속 대상에 포함시켰습니다.
특히, 일부 수업에서 사용한 ‘민족의 역사’ 자료와 ‘노동자 권익’ 관련 내용이 문제시되었습니다. 일본 경찰은 이를 두고 사회주의·민족주의 사상의 확산이라 판단했습니다.

(3) 폐쇄와 체포

1934년 봄, 원산경찰서는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노동야학 강사진 10여 명을 전격 체포했습니다.
체포 사유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 “조선인의 민족정신을 고취하는 불온서적 사용”
  • “노동자 단결을 선동하는 발언”
  • “불법 집회 개최”

이후 일제 당국은 행정명령을 내려 노동야학 건물을 봉쇄하고, 비품과 자료를 압수했습니다.
학생이었던 노동자들은 더 이상 야간 교육을 받을 수 없었고, 지역사회는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4. 노동야학의 의미와 영향

(1) 단순한 교육기관을 넘어선 민족운동의 장

원산 노동야학은 단순히 글과 셈을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 자신의 권리와 사회구조에 대해 인식하게 하는 계기를 제공했습니다.
이는 노동자들이 스스로를 ‘역사의 주체’로 인식하게 만들었고, 이후 지역 노동운동의 인적 기반이 되었습니다.

(2) 일제의 두려움

일제가 노동야학을 폐쇄한 이유는 교육 내용의 ‘위험성’에 있었습니다.
글을 읽는 노동자는 더 이상 지배에 순응하지 않았고, 법과 권리를 이해한 노동자는 불의에 침묵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식민 통치에 있어 큰 위협이었기 때문에, 일제는 사소한 빌미로도 탄압을 가했습니다.

(3) 폐쇄 이후의 움직임

폐쇄 이후 일부 교사와 학생들은 비밀리에 다른 공간에서 학습 모임을 이어갔습니다.
이는 공식적인 학교의 형태는 아니었지만, 소규모 스터디나 성경공부 모임을 가장해 교육을 지속했습니다.
이러한 ‘비공식 교육’은 해방 이후 원산 지역 노동조합 및 시민단체의 지도자 배출로 이어졌습니다.


5. 사건이 남긴 교훈

  • 지식은 힘이다 : 교육을 통해 노동자는 단순한 피지배 계층에서 벗어나 주체적인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 권력은 교육을 두려워한다 : 억압적인 체제는 언제나 의식 있는 민중을 경계합니다.
  • 역사의 기억 : 원산 노동야학의 사례는 오늘날 성인 문해 교육과 노동자 평생교육의 역사적 뿌리로 평가됩니다.

6. 결론

함경남도 원산 노동야학 폐쇄 사건은 일제강점기의 암울한 현실 속에서도, 조선인들이 배움의 끈을 놓지 않고 민족의식을 키워나가던 역사의 한 장면입니다.
비록 야학은 강제로 문을 닫았지만, 그 정신은 사라지지 않았고, 이후 노동운동과 민주화운동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