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산 어시장 조합 자치운동 탄압 사건 (1935)– 바다에서 시작된 민중의 자치, 식민권력의 탄압으로 꺾이다
🐟 마산 어시장 조합 자치운동 탄압 사건 (1935)
– 바다에서 시작된 민중의 자치, 식민권력의 탄압으로 꺾이다
1. 사건의 배경: 일제강점기의 어업과 민생 통제
1935년 조선은 이미 식민통치 하에 철저히 통제된 사회였다.
특히 경제적 자립과 자치에 대한 시도는 즉각 탄압의 대상이 되었다.
이 중에서도 식량과 직결되는 어업은 일제가 특히 민감하게 통제한 분야였다.
- 어업권은 조선총독부 해무국에서 관리했고,
- 어민 조직 역시 일본인 중심 어업조합 또는 관리직 관변조직이 장악
- 어시장 운영은 조선인에게 불리한 구조였고, 수수료 착취와 일본 상인의 독점 행위가 심각
이러한 상황에서 마산 지역 어민들이 주체적으로 시장을 운영하고,
조합의 자치를 요구하는 움직임은 **단순한 경제활동이 아니라 ‘생활 속 항일운동’**으로 기능했다.
2. 마산 어시장 조합의 자치운동이란?
마산 어시장은 당시 경남 최대의 수산물 유통 거점이었다.
일제는 이곳을 통해 어업세와 유통권을 독점적 통제로 관리했다.
그러나 조선인 어민들은 마산 어시장 조합을 중심으로 다음과 같은 자치 시도를 감행한다:
📌 주요 자치운동 내용
- 어시장 운영 규칙의 조선인 중심 개정
- 기존 일본 상인 위주의 운영권 조정 요구
- “일본인 외 유통 제한 철폐” 주장
- 수수료 인하 요구
- 전체 거래 금액의 15%까지 차지한 수수료를 5%로 축소 요청
- 어민 생계와 직결되는 문제였음
- 조합 간부 선출의 민주화 요구
- 기존 관선 간부 대신 직접 선출 방식으로 운영 요구
- “어민의 조합은 어민이 운영한다”는 슬로건 등장
- 일본 상인 독점의 비판 성명 발표
- 마산일보와 경남일보에 항의 성명 기고
- 일부는 경성까지 올라가 조선총독부 민정국에 탄원서 제출
이러한 일련의 움직임은 단순히 경제적 개혁이 아닌 민족 자치의식이 깃든 저항운동이었다.
3. 일본 헌병과 경찰의 탄압: 자치는 죄가 되었다
1935년 9월, 조합 자치화 운동이 지역 언론을 통해 퍼지자,
일제는 이 움직임을 **“조선인 민중선동 및 불온단체 구성 의혹”**으로 간주하고 본격적인 탄압에 나섰다.
👮 일제의 탄압 방식
- 어시장 조합 사무실 압수수색
- 자치운동 주도자 8명 체포, 그중 2명은 후에 경성형무소로 이감
- “사회주의적 성향”이라는 프레임을 씌워 검거
- 시장 폐쇄 경고 및 영업정지 명령
조합 자체는 해산당하지 않았지만, 자치권은 완전히 박탈되었으며
이후 운영은 조선인 명목 일본인 실질 권력의 이중 구조로 흘러갔다.
4. 민중의 힘은 꺾이지 않았다
하지만 마산 어시장 어민들은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탄압 이후에도 비공식적인 연대와 저항이 이어졌다.
- 비공식 조합 모임 ‘자립회’를 조직
- 일본 상인에 맞서 조선인 어민 연대 할인제도 운영
- 밀항로를 통해 밀수 입출어 거래로 일본 상인의 독점 회피
이 과정에서 일부 어민은 형평사, 신간회, 근우회 등 항일 조직과 연결되기도 했고,
1936년경에는 자립회 회원 중 일부가 “마산수산공동회”라는 비인가 조합 결성을 시도했다.
5. 이 사건이 갖는 역사적 의미
✅ 1) 생계와 항일이 만나는 지점
- 자치운동은 단순한 조직 개편이 아니라
일제 식민 경제구조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제기였다.
✅ 2) 비정치적 공간에서의 민족운동
- 교육, 언론, 종교 단체 외에도 시장, 조합, 생업 현장에서 이루어진 저항
- 민중 중심의 항일운동 확산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
✅ 3) 지역 단위 자치운동의 가능성
- 마산은 이후 1940년대 중반까지도 지역 자치와 저항의 요람이 되었으며
해방 이후 노동운동, 어민협동조합 운동의 뿌리가 되었다.
6. 조명되지 않은 이유
이 사건은 다음의 이유로 오랫동안 역사에서 잊힌 사건이 되었다.
- 무장 독립운동처럼 극적인 전투성이 부족
- 체포자들이 조직적 독립운동가로 분류되지 않음
- 사건이 지역 언론 수준에서만 보도됨
- 해방 후 좌우 이념 갈등으로 인해 생계 기반 항일운동이 조명에서 밀림
하지만 최근에는 생활사, 민중사, 지역사 연구자들에 의해 재조명되고 있으며
경남대·경남도청·마산역사관 중심으로 자료 수집이 진행 중이다.
7. 지금 우리가 이 사건을 기억하는 이유
조선의 항일운동은 총과 깃발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하루하루 생계를 유지하는 어민들의 장터에서도 독립의 불꽃은 살아 있었다.
- 자치를 향한 외침은, 곧 자유를 향한 몸짓이었다.
- 시장은 단지 생계의 현장이 아닌, 민족의 존엄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였다.
마산 어시장 자치운동의 정신은 지금도 자영업자, 노동자, 자치 공동체 안에 살아 있다.
우리는 지금 그 이름을 다시 불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