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알려지지 않은 한국 근대사

1924년 자혜의원 간호사 파업 사건 – 침묵을 깨고 의료 현장에서 일어난 항일의 외침

skillplanner80 2025. 8. 5. 07:22

1924년 자혜의원 간호사 파업 사건 – 침묵을 깨고 의료 현장에서 일어난 항일의 외침

대한민국의 의료 역사는 단순한 의학의 발전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곧 삶의 권리, 인간 존엄성, 그리고 저항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1924년 평양 자혜의원에서 일어난 간호사 파업 사건은, 지금도 의료 노동자 권리 문제와 여성의 사회적 위치를 말할 때 반드시 돌아보아야 할 역사적 장면입니다.

비록 잘 알려지지 않은 사건이지만, 이 파업은 일제강점기 의료현장에서 최초로 발생한 여성 노동자의 조직적 저항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간호사라는 직업을 가진 여성들이 단순히 돌봄의 존재를 넘어 사회의 부조리에 맞선 주체적 인물이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대표 사례입니다.

자혜의원 간호사 파업


1. 시대적 배경: 식민 통치 속 ‘자혜의원’과 간호사들

자혜의원은 일제강점기 조선 곳곳에 설치된 공공병원의 일종으로, 1900년대 초부터 각 도청소재지나 주요 도시에 설립되었습니다.
'자혜(慈惠)'라는 이름은 겉보기에는 인도주의적 병원처럼 보였지만, 실질적으로는 일본의 식민지 통치 기구 중 하나였습니다.

  • 의료진은 대부분 일본인이었고,
  • 조선인은 하급 위생 노동자나 간호조무 수준으로 제한되었으며,
  • 여성 간호사들은 고된 노동, 낮은 급여, 일제의 편파적 인사 관리 속에 놓여 있었습니다.

1924년의 자혜의원 간호사 파업은 이러한 구조적 억압에 대한 누적된 분노가 폭발한 사건이었습니다.


2. 파업의 배경: 차별과 착취, 그리고 모멸

당시 간호사들은 다음과 같은 환경에서 일했습니다:

  • 하루 12~14시간 이상의 노동
  • 월급은 남성 위생원보다 훨씬 낮은 수준
  • 일본인 의사의 무시와 폭언
  • 휴식 시간 거의 없음, 식사 제공도 불규칙
  • 기숙사 생활 강제, 통금 및 외출 통제

특히 문제가 되었던 것은, 간호사들이 ‘공공기관 소속’이라는 이유로 민간병원보다도 훨씬 낮은 임금을 받으며 인권 침해를 일상처럼 겪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일부 간호사들은 몰래 의료 노동조합 결성 논의를 하거나, 외부 진보적 단체와 접촉을 시도하기 시작했습니다.


3. 사건 발생: 파업 선언과 그 여파

1924년 7월, 평양 자혜의원의 간호사 14명 전원이 일제히 병원 출근을 거부합니다.
이들은 병원 앞에 모여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은 요구사항을 발표했습니다.

  • 정당한 임금 인상
  • 야간 근무 수당 지급
  • 일본인 의사의 폭언 중단
  • 간호사 자치기구 인정
  • 간호사 휴게시간 확보

이 파업은 당시 조선에서 여성 단독 노동집단이 벌인 첫 조직적 파업으로 기록됩니다.
자혜의원 측은 곧장 일제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고, 간호사 전원에 대해 ‘업무방해 및 소요 조장’ 혐의로 조사를 요청했습니다.


4. 일제의 대응과 언론 보도

당시 평양 지역 신문 일부에서 이 사건을 보도하였지만, 일제 당국은 ‘여성의 감정적 반응’으로 치부하며 파업을 폄하했습니다.
공식 보도 내용 중 일부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조선 간호부인들이 무리하게 의료 업무를 거부한 사태가 발생. 자혜의원 측은 업무 정상화를 위해 일본인 대체 인력을 긴급 투입 중…”

또한, 간호사들은 병원 규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전원 해고되었고, 일부는 향후 의료계 취업 제한 조치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 사건은 다른 자혜의원 간호사들에게 ‘불만을 표현할 수 있다’는 용기를 심어주는 계기가 되었고, 이후 전국 자혜의원에서 근무환경 개선 요구와 비공식적인 동맹휴업이 확산됩니다.


5. 사건의 의의: 여성, 간호, 그리고 저항

이 파업은 단지 노동 조건 개선만을 위한 움직임이 아니었습니다.
여성이자, 의료인이자, 조선인이었던 간호사들이 세 가지 정체성의 교차점에서 맞선 구조적 억압에 대한 저항이었습니다.

  • 여성이라는 이유로 복종을 강요받았고,
  • 식민지 국민이라는 이유로 착취를 당했으며,
  • 의료인이라는 이유로 인권 보호 대상이 아니라 ‘희생의 존재’로 여겨졌습니다.

그런 이들이 스스로 목소리를 내고 파업을 통해 체제를 흔들었다는 사실은,
일제강점기 항일운동사의 주류 서사에서 벗어난 중요한 장면입니다.


6. 오늘날의 의미

2020년대 대한민국에서도 의료 노동자의 권리와 처우 문제가 사회적으로 중요한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100년 전 평양에서 일어난 간호사들의 파업은, 우리가 이 문제를 바라보는 새로운 렌즈를 제공합니다.

  • 우리는 종종 ‘위대한 독립운동가’만을 기억하지만,
  • 이름도 기록되지 않은 여성 의료인들의 침묵을 깬 외침도 독립운동의 연장선이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 마무리

자혜의원 간호사 파업은 작은 병원 안의 반란이었지만, 역사 속에서 큰 울림을 남긴 항일의 목소리입니다.
그들은 총을 들지도, 깃발을 들지도 않았지만,
자신의 노동과 몸을 통해 부당한 구조에 저항했고, 시대를 흔들었습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이름 없는 영웅들의 역사를 발굴하고 기록하는 것입니다.
그 기억이야말로, 진짜 민주주의와 인권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