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알려지지 않은 한국 근대사

1932년 전주고등보통학교 항일시 낭독 사건 — 침묵을 찢고 울린 조선 청소년의 저항

skillplanner80 2025. 8. 3. 03:06

1932년 전주고등보통학교 항일시 낭독 사건 — 침묵을 찢고 울린 조선 청소년의 저항

서론 — 펜으로 맞선 조선의 10대들

일제강점기, 검은 교복과 하얀 교과서 사이,
조선의 청소년들은 ‘황국신민’이라는 이름 아래 침묵을 강요받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일본어로 된 교과서와 일왕을 찬양하는 노래,
그리고 천황을 향한 절대복종만이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주어졌다.

그러나 1932년 전라북도 전주의 한 교실에서는
이 침묵을 깨는 날카로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전주고등보통학교의 한 학생이 자작한 항일시를 수업 시간에 낭독하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이 사건은 단순한 개인의 발언이 아닌,
조선 청소년이 일제 식민교육에 반기를 든 공개 저항이었다.
그리고 이 조용한 한 줄의 시는,
일본 제국주의의 억압 속에서 번지는 작은 불씨가 되었다.

 

전주고등보통하교 항일시 낭독사건


전주고등보통학교는 어떤 학교였나?

전주고등보통학교(현재 전주고등학교의 전신)는
일제강점기 전라북도 지역에서 엘리트 학생들을 양성하기 위한 대표적인 관립학교였다.
1911년에 설립되어 조선인과 일부 일본인 학생이 함께 재학하였고,
그 교육과정은 전적으로 일본의 식민지 교육정책에 따랐다.

교육 내용은 철저히 ‘내선일체’ 이념에 입각한 황국신민화를 목표로 했으며,
학생들은 일본어 사용을 강요당하고
조선 역사와 문화는 왜곡되거나 아예 배제되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학생들 사이에서는 민족주의적 정서와 민감한 정치의식이 조용히 공유되고 있었다.
그 중심에 시와 문학, 그리고 '낭독'이라는 행위가 있었다.


사건의 발단 — 교실에서 울려 퍼진 ‘항일시’

1932년 5월.
전주고등보통학교 4학년의 한 조선인 학생이
‘국어(일본어)’ 수업 시간에 자작시를 낭독했다.

그 시는 제목도, 문장도 당시 상황에서 너무나도 대담했다.
직접적인 일왕 비판은 아니었지만,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겨 있었다고 전해진다:

“칼과 총으로 배운 지식은 피의 대가를 요구한다
그 피는 누구의 것인가,
조선의 땅에서 자란 나무는 왜 일본의 햇살만을 받는가”

교사는 즉각 수업을 중단시키고, 해당 학생을 교무실로 끌고 갔다.
그러나 그 소문은 순식간에 전교생에게 퍼졌고,
이튿날에는 다른 학년 학생 몇 명이 자율학습 시간에
비슷한 내용을 담은 시와 글귀를 ‘낭독’하거나 교내 게시판에 붙이기 시작했다.


일제의 즉각적인 탄압과 조사

사건 발생 후 일제는 매우 신속하게 대응했다.
조선총독부 경무국은 **‘불온사상 유포 사건’**으로 분류하고,

  • 해당 학생 1명을 퇴학 조치
  • 관련 학생 6명을 정학 및 훈방
  • 교사 1명을 징계 및 타 학교로 전출
  • 교내 문예 동아리 폐쇄
  • 모든 자치활동 중단
    조치를 단행했다.

또한 학교 측은 총독부에 항의의 의미로 ‘학생의 일탈’임을 공식적으로 보고하며
학교 전체가 '반성문'을 제출하는 황당한 상황까지 벌어졌다.


사건이 던진 파문과 파급 효과

전주고보 항일시 낭독 사건은
전국적으로 큰 언론 보도를 받지는 못했지만,
학생 저항의 상징적인 사례로 교육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당시 전국 고등보통학교 교장 회의에서는
“문예교육은 사상오염을 부를 수 있다”는 이유로

  • 교내 문예 동아리 폐지 권고
  • 시낭송 대회 전면 중단
  • 조선어 수업 제한
    등의 조치를 권장하기도 했다.

또한 이후 경남, 충북 등지에서도 유사한 ‘낭독 저항’ 사례가
비공식적으로 보고되며, 학생들 사이에서 문학을 통한 저항 정신이 전파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사건의 역사적 의미

  1. 청소년 주도의 평화적 항일운동
    • 무력이 아닌 언어와 시를 통한 저항은 당시로서는 드문 형태였다.
  2. 문학을 통한 민족의식 표현
    • 시와 낭독은 단지 예술이 아니라 저항의 도구가 되었다.
  3. 식민지 학교 안에서의 내부 붕괴
    • 체제 순응을 전제로 한 식민교육의 균열을 보여줌.
  4. 전북 지역 항일운동의 연결고리
    • 이후 전북 지역 청소년 항일운동의 촉매가 됨.

오늘날의 기억과 재조명

전주고보의 이 사건은 해방 후 오랜 시간 동안 잊혀졌지만,
2000년대 들어 지역 언론과 교육사 연구자들에 의해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현재 전주고등학교 교정에는
‘자유의 종’이라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으며,
매년 학교에서는 ‘자유 낭독제’라는 이름으로
학생들이 직접 시를 쓰고 낭독하는 행사를 열고 있다.

이는 당시 용기를 낸 10대들의 정신을 잇는
교육적 의의와 함께,
역사를 단지 과거로 남기지 않겠다는 다짐이기도 하다.


결론 — 조용한 시 한 줄이 전한 강렬한 울림

1932년 전주고등보통학교의 한 학생이 낭독한 시는
총이나 폭탄 없이도
조선의 하늘을 울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시를 통해 민족의식을 드러낸다는 것은
한편으론 가장 위험한 저항이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가장 인간적인 외침이었다.

오늘날 그들이 낭독한 문장은 남아 있지 않지만,
그 정신은 우리 역사 속에서 계속해서 메아리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