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북 의주 학생 시위 사건 (1929) — 광주학생운동에 호응한 북녘의 뜨거운 함성
1. 사건 개요
1929년 겨울, 평안북도 의주에서 벌어진 의주 학생 시위 사건은 당시 전국적으로 확산된 광주학생운동의 불씨가 북쪽 국경 도시까지 번져 일어난 대표적 항일 학생운동입니다.
광주에서 발화한 학생들의 독립과 자유를 향한 외침은, 멀리 떨어진 의주 청년들에게도 강한 울림을 주었고, 그들은 식민 권력의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거리로 나섰습니다.
이 시위는 단순히 지역적 차원의 항거가 아니라, 전국적 항일 네트워크가 형성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으며, 이후 평북 일대 학생·청년운동의 성장에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2. 역사적 배경
(1) 광주학생운동의 발발과 확산
1929년 11월 3일 광주에서 발발한 학생운동은, 일본인 학생들의 조선인 여학생 희롱 사건과 경찰의 편파적 대응을 계기로 폭발했습니다.
하지만 그 근본적인 원인은 민족차별 교육, 언론·집회의 자유 억압, 식민지 경제 수탈 등 식민 통치 전반에 대한 불만이었습니다.
광주학생운동은 곧 전국으로 확산되었고, **‘조선독립 만세’**를 외치는 학생들의 시위 소식은 철도·우편·신문을 통해 평북 의주에도 전해졌습니다.
(2) 의주의 정치·지리적 특수성
의주는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중국 단둥과 맞닿아 있는 국경 도시였습니다.
이 지역은 상업과 무역이 활발했고, 독립운동가들의 이동 통로이자 항일운동의 거점 역할을 했습니다.
의주의 청년·학생들은 국내외 독립운동 소식에 빠르게 반응했고, 특히 광주에서 시작된 학생 시위의 정신을 적극 계승하려는 의지가 강했습니다.
3. 사건의 전개
(1) 시위 준비 과정
광주 소식을 접한 의주보통학교와 의주농업학교 학생들은 비밀리에 회합을 갖고 시위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들은 다음과 같은 구호를 준비했습니다.
- 조선독립 만세
- 민족차별 교육 철폐
- 일본인 교장·교사 퇴진
- 학생 탄압 중지
이 과정에서 의주 청년동맹과 지역 종교인들이 물심양면으로 지원했습니다. 특히 교회 청년부는 전단 제작과 배포를 맡아 시위의 사전 홍보를 도왔습니다.
(2) 시위 발발
1929년 12월 10일 아침, 학생들은 교문 앞에 모여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내 중심가로 행진을 시작했습니다.
시위에는 남녀 학생 수백 명이 참여했고, 일부 시민들도 이에 합류했습니다.
학생들은 일본 상점과 경찰서를 향해 **“조선인 차별 중지”**를 외쳤으며, 항일 구호가 적힌 종이를 뿌렸습니다.
(3) 경찰의 진압
일제 경찰은 즉각적으로 출동하여 시위대를 해산하려 했지만, 학생들의 저항은 완강했습니다.
일부 학생은 경찰의 곤봉에 맞아 부상을 입었고, 지도부로 지목된 학생 30여 명이 현장에서 체포되었습니다.
이후 추가 검거가 이어져 총 80여 명이 연행되었으며, 이 중 주동자 다수는 퇴학과 구류형을 선고받았습니다.
4. 탄압 이후의 여파
(1) 학생·시민의 연대 강화
체포된 학생들의 석방을 요구하는 서명운동이 의주 전역에서 벌어졌습니다.
지역 상인과 농민들도 동참하여 일본 상품 불매운동을 전개했고, 이는 민족경제 자립의 필요성을 확산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 북부지역 학생운동의 성장
의주 사건 이후 평양, 신의주, 정주 등지의 학생들은 보다 조직적인 항일운동을 준비하게 되었고,
중국과 만주 지역 독립운동 세력과의 연락망이 강화되었습니다.
5. 사건의 의의
- 전국적 항일 네트워크의 증거
- 광주학생운동이 단발적 사건이 아니라 전국으로 확산된 대규모 항일 저항이었다는 사실을 보여줌.
- 국경지역 항일운동의 활력
- 의주와 같은 국경 도시는 정보와 인적 교류가 활발해, 독립운동의 중요한 거점이 되었음.
- 학생과 시민의 연대 모델
- 시위에 시민이 합류하고, 이후 구명운동과 불매운동으로 이어진 점은 항일운동의 새로운 전개 방식이었음.
6. 결론
평북 의주 학생 시위 사건은 단순히 지역적 항거가 아니라,
일제 식민 통치에 맞선 전국적 저항의 일부였으며, 특히 북부지역 항일운동의 잠재력을 보여준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광주에서 시작된 불씨가 의주에서 다시 타올랐듯, 학생들의 외침은 이후 만주, 중국, 소련으로까지 이어지는 독립운동의 흐름 속에 깊이 각인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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