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사라진 목소리
― 일제강점기 여성 교사 탄압과 조선 여인의 저항
“머리를 짧게 잘라라. 조선말은 쓰지 마라.”
1920년대 어느 봄, 경성의 한 여학교.
아침조회가 끝나자
교장실에서 일본인 교감이 소리칩니다.
“여교사들은 일본어만 쓸 것,
머리는 모두 단정하게,
조선식 쪽진 머리는 금지한다!”
교사들은 굳은 얼굴로 서로를 바라봅니다.
누군가는 눈을 질끈 감고,
누군가는 속으로
“나는 누구이고,
여기는 어디인가”
속삭입니다.
학교와 교실, 전선이 되다
일제강점기,
학교는 단순한 교육의 공간이 아니었습니다.
조선의 아이들에게
일본어와 황국신민 사상을 강요하고
교사와 학생 모두를 감시하며
항일운동의 싹을 미리 꺾으려는
정치적 실험장이기도 했습니다.
특히 여성 교사는
이중, 삼중의 차별과
억압을 견뎌야 했습니다.
‘조선 여인은 순종적이어야 한다’
식민지 조선 사회에서
여성의 직업,
특히 교사라는 위치는
그 자체로 도전이었습니다.
- 여성의 목소리가 클 수 없고
- “여자가 똑똑하면 안 된다”는 편견 속
- 남교사, 일본인 관리자, 심지어 학부모까지
끊임없이 의심과 압박을 가했습니다.
그런데도
수많은 조선 여인들은
교단에 섰습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며
민족의 언어, 역사를
작게나마 지키려 애썼습니다.
일제의 규제, 끝없는 억압
1930년대 이후
일제는 여성 교사에게
더 강도 높은 탄압 정책을 시행합니다.
- 일본어만 사용 강요
- “조선말 금지령”
- 머리카락은 단발 또는 올림머리만 허용
- 쪽진머리, 조선식 비녀·노리개, 전통 옷 착용 금지
- 수업시간, 일상 대화, 회의 모두 일본어로만 진행
학교 복도에는
일본인 교감, 순사가
수시로 순찰을 돌며
교사들의 언행을 감시했습니다.
모욕과 압박, 그리고 저항
어느 날,
한 교사가
“아이가 배가 아프다”고
조선말로 말하자
즉각 일본인 교감이 불러
공개적으로 망신을 줍니다.
“이런 여자는
학생을 황국신민으로 만들 수 없다!”― 1934년 경성여고 실기록
누구도 공개적으로 반발하지 못했지만
밤이면
여교사들은 서로 모여
“오늘도 조선말 한 마디
아이에게 몰래 가르쳤다”고
속삭였습니다.
머리카락의 저항
머리 모양에 대한 단속도
하루가 멀다 하고 이어졌습니다.
전통 쪽진머리, 비녀, 댕기
모두 금지
“일본 여교사처럼 단정히 묶고,
모양이 어긋나면 바로 문책”
하지만
여성 교사들은
머리카락 속에
쪽지나 작은 책자를 숨겨
항일격문, 민족 동요,
시 한 구절을
동료나 제자에게 몰래 전했습니다.
“쪽진머리는
내 조상, 내 엄마의 흔적이다.
머리칼 하나도 뺏기지 않으려
밤마다 울었다.”― 전북 여교사 구술, 1936년
일상 속 차별과 굴욕
여교사들은
수업 전후로
일본인 교장 앞에서
머리를 숙여 인사해야 했고
조금만 표정이 굳거나
목소리가 작아도
“불성실”, “불충”이라며
인사고과가 깎였습니다.
심지어
교사 회식 자리에서
일본인 남성 관리자들이
조선 여성 교사를 조롱하거나
“왜 웃지 않느냐”고
타박하는 일도
일상적으로 일어났습니다.
교단을 지키는 작은 용기들
그럼에도
수많은 여성 교사들은
교단을 지켰습니다.
- 일본어 교과서 안에
조선역사·문학 쪽글을
몰래 끼워 넣고 - 아이들에게
“집에 가선 어머니 말(조선말) 잊지 말아라”
작은 쪽지를 건넸습니다.
가끔
학생이 일제 경찰에 끌려가면
“가족에게 소식 전해달라”
눈물로 부탁하는
동료 교사도 있었습니다.
현장에 남은 기록들
당시 신문, 학교 기록,
교사 구술 자료에는
이런 증언이 남아 있습니다.
- “여성 교사가 머리 모양 때문에
벌점 받고 봉급이 깎였다.” - “수업시간 조선말 썼다고
정직·파면된 여교사” - “밤마다 여교사들끼리
조선 동요를 불렀다.”
그들은 평범한 이웃, 그리고 숨은 영웅
이름도, 얼굴도
역사책에 길이 남지 않은
수많은 여성 교사들.
이들은
폭력과 멸시, 차별 속에서도
민족의 언어, 자존심,
그리고 아이들의 내일을
작게나마 지켜냈습니다.
오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
머리카락 하나,
단어 하나,
웃음 하나까지
철저히 통제당했던
그 시절의 여성 교사.
그 속에서
지켜낸 조용한 저항이
오늘 우리 학교,
자유롭게 배우고 가르치는
모든 일상 속에
씨앗이 되어 남아 있습니다.
“선생님의 조선말 한마디에
나는 나를 잊지 않았다.”― 1980년대, 당시 제자 회고
참고자료
- 독립기념관 여성운동 구술 자료
- 경성여고, 진명여고, 이화여고 등 학교 기록
- 1920~30년대 신문, 여성잡지
- 현대 여성사, 교육사 논문
- 현장 교사 구술채록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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