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에서 상해로, 한 여인의 용기
― 독립운동 자금 송금 사건의 숨은 영웅
“돈을 부친다는 것이 이렇게 무서운 일인지 몰랐습니다.”
1920년대 어느 봄,
강릉 읍내의 한 작은 초가집.
이른 새벽, 이씨 부인은 손에 꼭 쥔 보따리와 우편증서를 내려다보며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오늘 밤 기차가 뜨기 전에
이 돈을 꼭 부쳐야 해요.
만약 들키면, 우리 집도… 우리 목숨도 위험할지 몰라요.”
딸과 짧게 눈을 맞추고
두꺼운 장옷을 걸친 채 어둠을 뚫고 집을 나섭니다.
그녀의 발걸음 하나하나에는
조국의 내일을 향한 결의와
두려움이 공존하고 있었습니다.
조선 동해안의 작은 도시, 강릉
일제 강점기 강릉은
산과 바다, 조용한 골목, 그리고
시장에서 오가는 이방인의 말소리가
뒤섞인 평범한 동해안 도시였습니다.
하지만 곳곳에는
‘상해 임시정부’
‘독립운동 자금’
‘비밀 연락망’ 등
속삭임이 이어졌습니다.
강릉은 동해의 물길을 따라
북간도·연해주·상해까지
지하 항일운동의 통로가 이어지는
전략적 거점이기도 했습니다.
숨겨진 자금, 평범한 삶에 깃든 용기
이씨 부인은 평범한 상인이자
한 집안의 어머니였습니다.
하지만
집안 식구와 몇몇 이웃,
그리고 시장에서 만난 독립운동 연락원들과
작은 연대를 맺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모으는 돈은
쌀 한 말, 물고기 판 돈,
장에 내다 판 바느질 값 등
하루하루 땀 흘려 모은
조선 민중의 피 같은 자금이었습니다.
이 자금은
비밀리에 묶어
편지, 물건, 심지어 옷섶 속에 숨긴 뒤
동해 바다를 따라 상인·우편·운송인을 통해
임시정부와 독립군,
망명자들에게 전해졌습니다.
“이 돈, 반드시 상해로 보내야 합니다.”
이씨 부인과 동지들은
특정 날짜, 특정 우체국에서
정해진 이름으로만 송금을 진행했습니다.
- 부치는 이는 항상 가명을 사용
- 받는 쪽도 연락책을 통해 암호화된 신원 확인
- 돈의 액수, 방법, 편지 내용까지
모두 암호와 약속된 암구호로 처리되었습니다
송금의 순간,
늘 긴장과 공포가 따라다녔습니다.
일제 경찰과 밀정들은
조선 각지의 ‘이상 송금’이나
‘큰돈 거래’를 예의주시했고
우편·운송 종사자까지 미행하며
항일운동 자금의 흐름을 잡으려 혈안이었습니다.
위험 속의 실패와 기적
그날 밤,
이씨 부인은 읍내 우체국 골목에서
일제 순사의 감시를 피해
한참을 망설이다
마침내 송금 창구에 돈을 맡깁니다.
하지만 잠시 후
익명의 밀고자가 경찰에 신고하면서
그녀는 체포되어
경찰서 취조실로 끌려갑니다.
“당신, 이 돈 어디로 보내려 했소?”
“그저 먼 곳 친척에게 부치려 했을 뿐입니다.”
“임시정부에 송금한 것, 다 알고 있어!”
며칠 밤낮의 취조와 협박,
심지어 고문이 이어졌지만
이씨 부인은
끝까지 자금의 진짜 경로와
연락책의 신분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송금의 물결, 전국으로 번지다
이씨 부인의 사건은
당시 지역 신문·소문을 통해
강릉뿐 아니라
동해안과 내륙 각지에 퍼졌습니다.
“누구도 혼자서 조국을 살릴 수 없지만
우리 모두가 작은 힘을 보태면
언젠가 반드시 봄은 올 것이다.”
이후
더 조심스럽게,
더 치밀하게
독립운동 자금 송금망은
강릉뿐 아니라
함경, 경상, 충청, 전라도 각지로
퍼져나갔습니다.
- 부녀자, 상인, 학생, 교사, 심지어 어린 소년들까지
- 일상 속에서
송금, 연락, 물품 전달, 암구호 주고받기 등
다양한 방식으로 항일의 불씨를 이어갔습니다.
일제의 감시와 조선인의 창의성
일제 당국은
금융·통신·운송 등
모든 자금 흐름을 감시하기 위해
‘의심스러운 우편·환전 거래’
‘특정 지역 반복 송금’
‘가족·혈연 아닌 송금’에
특별조사를 시행했습니다.
- 우체국 직원에 대한 심문
- 우편물 개봉, 암구호 탐지
- 송금인 추적, 가족·이웃까지 조사
이 과정에서
여러 명이 체포, 고문, 심지어 투옥되기도 했지만
각 마을마다
- 여성들은 가짜 이름을 썼고
- 상인들은 쌀, 생선, 곡식 값인 척 꾸미고
- 심지어 시골 우체국 직원도 몰래 협조하기도
하는 등
민중의 지혜와 연대가
운동의 맥을 이어갔습니다.
송금이 가져온 또 다른 희망
상해 임시정부로 무사히 송금된 자금은
독립운동가들의 생계,
무기와 신문·격문 제작,
학교·병원 운영,
망명자 구조 등에
소중히 쓰였습니다.
- 임시정부 기록에는
“강릉 모처에서 온 자금, OOO가 전달”
“동해안 해로 따라 온 쌀값 송금분 수령”
같은 사례가 남아 있습니다.
어떤 경우
송금 실패로 돈이 몰수되거나
송금인이 체포되었지만,
그때마다 새로운 사람이
또 다시 일어섰습니다.
“누가 먼저 희생해도,
남은 이들이 반드시
조국에 돈과 소식을 전했다.”― 임시정부 기록, 1931년
숨은 영웅, 이름 없는 기록
강릉의 이씨 부인은
훗날 풀려난 뒤에도
긴 세월 동안
누구에게도 자신의 일을
자랑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녀의 송금 사건은
강릉 시민들,
그리고 동해안의 수많은 여성과 이웃들에게
묵묵한 용기와 연대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이후
강릉·속초·동해안 등지에는
독립운동가를 지원한
여성 송금인, 연락책, 밀사들의
이름 없는 이야기가
더 많이 남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
독립운동 자금 송금,
이름도, 얼굴도 남지 않은
수많은 이들의 작은 행동이
결국 나라를 살렸습니다.
그 한 번의 송금이,
그 밤의 두려움이,
바로 오늘 우리가
당당히 살아가는
자유와 희망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진짜 영웅은
이름이 역사책에 남지 않을지라도,
조국의 내일을 위해
자신을 걸었던 그 모든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참고자료
- 강원독립운동사 연구회 자료집
- 독립기념관 ‘여성의 독립운동’ 구술
- 임시정부 송금·회계 문서
- 1920~30년대 강릉·동해 신문 기사
- 현대 항일운동 연구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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