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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려지지 않은 한국 근대사

신문지에 담긴 자유의 씨앗― 천도교 청년당 비밀 신문 배포 사건

by skillplanner80 2025. 7. 26.

신문지에 담긴 자유의 씨앗

― 천도교 청년당 비밀 신문 배포 사건

밤 골목에서 신문을 몰래 전하는 조선 청년

 


“이 종이 한 장이, 누군가의 희망이 될 거야”

1920년대 초, 서울 종로의 한 좁은 골목.
어둑한 밤,
천도교 청년 김성현(가명)은
작은 인쇄소 창문을 조심스레 두드립니다.

“이쪽이 맞죠? 오늘 분량 나왔어요?”
작은 목소리에 인쇄공이 고개를 끄덕입니다.
어둠 속,
얇은 신문 뭉치가 헝겊 보따리에 감춰집니다.

“조심해요. 순사들이 골목마다 돌고 있어요.”
“걱정 마요.
이 신문이 오늘 밤 열 군데,
내일 아침엔 스무 군데 더 퍼질 겁니다.”

종이에 잉크 냄새가 짙게 배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짙은
젊은이들의 용기와 결의가
신문지 한 장 한 장마다
숨 쉬고 있었습니다.


일제강점기, ‘말’과 ‘종이’의 싸움

1920년대는
일제의 무단통치가 조금 완화되고
문화통치로 바뀌었지만,
조선 민중의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일본 당국은
비판적 언론, 신문,
독립·민족운동 관련 모든 정보를
철저히 검열했습니다.

그러나
‘진실은 반드시 전해진다’는 신념을 가진
수많은 청년들이
목숨을 걸고
비밀리에 신문·잡지·격문을
배포하기 시작합니다.

천도교 청년당도
이 조용한 전선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천도교 청년당, 언론의 창이 되다

천도교 청년당은
3·1운동의 주역이었던 천도교의
청년조직으로,
자주·평등·평화의 정신을
새 시대에 이어가려 노력했습니다.

  • 젊은 교단 간부, 인쇄기술자,
    학생, 상인, 교사 등
    다양한 이들이 모여
  • 자체 인쇄소를 만들고
  • ‘신문’, ‘격문’, ‘독립신문’,
    ‘교회 소식지’ 등
    다양한 형태의 인쇄물을
    밤마다 찍어냈습니다.

이 신문들은
일제 당국의 눈을 피해
전국 각지로
몰래 전달됐습니다.


비밀 배포, 한 장의 신문이 가진 힘

신문 배포에는
치밀한 계획과
수많은 이들의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 신문은 보따리·빵 상자·옷더미·쌀푸대 등
    일상 물품 속에 숨기고
  • 각 지역 청년들에게
    암구호로만 전달
  • 배달책은 매번 다른 길,
    다른 시간에 움직여
    미행을 피했습니다.

신문을 받은 이들은
새벽마다 마을 회관, 시장,
우물가, 학교, 심지어
경찰서 앞에도
신문을 몰래 흩뿌렸습니다.

“이 종이 한 장이
내 이웃, 내 가족,
내 조국을 깨우는 힘이 될 거라 믿었다.”

― 청년당원 구술


일제의 감시와 배포책들의 모험

일본 경찰과 밀정들은
신문지 배포 루트를 추적하기 위해
암암리에 청년들을 미행하거나
인쇄소를 급습하기도 했습니다.

  • 몇몇 지역에선
    배포책이 체포되어
    신문 전량이 압수되거나
  • 인쇄소가 폐쇄,
    관련자 구금,
    심문, 고문이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청년당원들은
끈질기게 신문 발행을 이어갔고
체포·투옥된 동료 대신
다른 이가 바로 그 자리를 메웠습니다.

“누군가 잡혀가면
나머지는 더 조심해서
신문을 돌렸다.”

― 당시 청년당원 구술


신문에 담긴 이야기들

이 신문지에는

  • 일제의 폭압과 부당한 정책
  • 민중의 현실과 고통
  • 각지 독립운동 소식
  • 항일 청년들의 시, 수필
  • 교육·복지·여성·어린이 관련 기사
  • 격려의 문구, 민중시, 교단 소식
    등이 실렸습니다.

어떤 신문은
짧은 시 하나,
작은 소식 하나만 실려 있어도
독자들은 그 한 구절을 돌려 읽으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 신문이 내게 희망을 줬다”

많은 이들이
“천도교 신문지를 처음 받아 봤을 때
밤새도록 불을 끄지 못했다”고
증언합니다.

  • 농민은
    “우리 쌀이 왜 일본에 다 넘어가는지”
    처음 신문을 보고 알았고
  • 노동자는
    “조선에도 아직
    정의와 용기가 살아있음을 느꼈다”고 했으며
  • 여학생은
    “신문을 몰래 친구들에게 돌리다
    책가방을 빼앗기고 심문받기도 했다”고
    회고합니다.

이 작은 신문 한 장이
온 마을,
온 학교,
온 가족의
희망이었습니다.


신문지 배포의 전국적 파장

천도교 청년당 신문은
전국 각지
— 평양, 대구, 군산, 진주, 원산 등 —
도시와 시골,
교회, 학교, 시장, 공장까지
번져나갔습니다.

일제 경찰도
“정체불명의 신문지가
전국 각지에 흩뿌려지고 있다”
“천도교계 청년 조직이
배후로 지목된다”
라고 공식 보고서를 남겼습니다.

신문 배포책은
때로 여인, 학생, 어린아이까지
누구나 될 수 있었습니다.


이후의 변화와 교훈

이 비밀 신문 배포 사건은

  • 1920~30년대 전국 언론·민중운동의 기폭제
  • 지하 신문 인쇄·유통 기술의 발전
  • 항일 청년·학생운동의 전통
  • 지역사회 연대와 정보 공유 문화
    를 남겼습니다.

오늘날의
자유 언론, 표현의 자유,
시민사회 연대의 뿌리에는
이런 조용한 밤의 종이 한 장,
이름 없는 배포책들의 노력이
깊이 깔려 있습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

한 장의 신문,
그 종이에 찍힌 작은 글씨,
그것을 전하기 위해
두근거렸던 젊은 심장.

그 밤 골목마다
신문지를 돌리던
그 이름 없는 청년들이
오늘 우리 사회의
자유, 연대, 희망의
씨앗이었습니다.

“종이 한 장으로도
세상을 바꿀 수 있다.”

― 천도교 청년당 신문지 배포 사건 회고


참고자료

  • 천도교 청년당 100년사
  • 1920~30년대 조선일보·동아일보 기사
  • 민중운동·언론사 논문
  • 독립기념관 구술·자료집
  • 지역사·청년운동 구술채록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