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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려지지 않은 한국 근대사82

1939년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 교과서 항의 사건 — 침묵을 거부한 조선의 여학생들 1939년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 교과서 항의 사건 — 침묵을 거부한 조선의 여학생들서론 — 조선 여성, 침묵을 거부하다1939년. 일제의 식민지배가 극에 달하던 시기,경성의 한 전문학교에서 조선 여성들이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 침묵을 깨는 사건이 벌어졌다.이들은 군홧발 아래서 공부하는 여학생들이었고, 의술을 배우는 학도들이었다.이 사건은 일제 강점기 후반,국가주의적 교과서 강제 도입에 항의한 여학생들의 집단 퇴장 및 시위 사건으로,조선 여성의 독립된 지성적 저항이라는 점에서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당시 언론 보도는 철저히 통제되었고,사건 이후 가해진 징계는 무겁고 잔혹했지만,그 기록은 현재까지 조선 여성 지식인의 양심으로 남아 있다.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란?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는일제강점기 조선에서 유.. 2025. 8. 3.
불령선인(不逞鮮人) 감시 문서 대량 작성 — 기록된 감시, 망각된 공포 불령선인(不逞鮮人) 감시 문서 대량 작성 — 기록된 감시, 망각된 공포1. 서론 — ‘불령선인’이란 누구였는가?일제강점기 조선에서 ‘불령선인(不逞鮮人)’이라는 말은단순한 ‘불순분자’가 아니었다.이 용어는 조선인을 통제하고 감시하기 위해 만들어진 낙인,즉 일제가 만든 공포의 이름표였다.일제는 독립운동가나 항일 인사뿐 아니라조선 민중 누구에게나 이 꼬리표를 달 수 있었다.학교 교사, 상점 주인, 종교인, 여학생, 심지어말 한마디 실수한 이들까지 감시 대상이 됐다.그 감시의 결과는수십만 장의 문서와 기록으로 남았고,그 기록은 지금도 일본 국가기관에 보관 중이다. 2. ‘불령선인’이란 용어의 기원과 의미‘불령(不逞)’은 문자 그대로 ‘말을 듣지 않는, 불순한’이라는 의미다.‘선인(鮮人)’은 조선인을 낮춰 부른 .. 2025. 8. 2.
경성제국대학 식민사학 강제 교육 (1924~) — 조선의 뿌리를 지우기 위한 학문의 식민화 경성제국대학 식민사학 강제 교육 (1924~) — 조선의 뿌리를 지우기 위한 학문의 식민화1. 서론 — 학교는 무기를 들지 않는다, 하지만 무기가 된다학교는 사람을 길러내는 곳이다.하지만 어떤 학교는사람을 지배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1924년 일제가 설립한 경성제국대학은조선의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기관처럼 포장되었지만,실제로는 조선의 지식인을 식민사관으로 세뇌하기 위한 핵심 기관이었다.이 대학은 조선에서 유일하게 ‘제국대학’이라는 이름을 부여받은특별한 지위의 교육기관이었지만,그 특별함은 지배를 위한 도구로 기능했다.2. 설립 배경 — 조선을 학문으로 지배하라1910년 강제병합 이후,일제는 단순한 군사적 점령을 넘어문화·교육·학문적 지배를 추구했다.1911년 보통학교령, 1915년 제2차 교육령 등을 통.. 2025. 8. 2.
이육사 체포 사건 (1937) — 시인이자 투사, 조선의 미래를 품은 폭탄 이육사 체포 사건 (1937) — 시인이자 투사, 조선의 미래를 품은 폭탄 1. 서론 — 시인이며 저항가였던 사나이‘청포도’라는 시로 잘 알려진 이육사(李陸史).우리는 그를 흔히 문학 교과서 속 저항 시인으로 기억하지만,그는 단지 글로 항일을 외친 지식인이 아니었다.그는 실제로 무기를 들고 독립을 준비했던 실천적 투사였다.1937년, 그는 조선 본토에 다이너마이트를 들여오려다체포되고 고문당하며 또다시 투옥된다.이 사건은 조용히 기록 속에 묻혔지만,그의 진짜 삶을 마주하게 하는 결정적 장면이기도 하다.이번 글에서는 이육사의 체포 사건을 중심으로그의 생애, 의지, 문학과 저항을 함께 살펴본다.2. 이름, 육사 — 감옥번호에서 시작된 정체성이육사의 본명은 **이원록(李源祿)**이다.그는 안동의 유학자 집안 출.. 2025. 8. 2.
간도참변 (1920) — 피로 쓴 국경의 기억, 잊혀진 대학살 간도참변 (1920) — 피로 쓴 국경의 기억, 잊혀진 대학살 1. 봉오동·청산리의 영광 뒤에 가려진 비극1920년, 독립운동의 기운이 만주와 간도를 뒤덮고 있었다.그해 6월, 봉오동 전투에서 홍범도 장군이 이끄는 독립군이 일본군을 물리쳤고,10월에는 김좌진 장군의 북로군정서가 청산리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며조선 민중은 환호했고, 일제는 분노했다.일본은 이 ‘굴욕’을 절대 그냥 넘기지 않았다.그 보복은 무장 독립군이 아닌 민간인을 향했다.그해 겨울, 일본군은 만주 간도 지역에 대대적인 보복작전을 감행했고,이는 수천 명의 조선인이 학살당한 **간도참변(間島慘變)**이라는 이름의 비극으로 남았다.이 글은 영웅의 전투 뒤에 가려진이름 없는 사람들의 학살을 기억하고자 한다.2. 배경 — 북간도와 조선인의 이주간도.. 2025. 8. 1.
경북 청송 장날 총격 사건 (1931) — 장터에서 터진 총성, 침묵 속의 항일 비극 경북 청송 장날 총격 사건 (1931) — 장터에서 터진 총성, 침묵 속의 항일 비극 1. 서문 — 평범한 장날, 피로 물들다1931년 봄, 경상북도 청송의 장터는 언제나처럼 분주했다.주민들은 소를 사고 곡식을 팔고, 바느질거리와 엿을 사고팔며가난하지만 활기를 띠는 전통적인 시골 장날의 풍경이 펼쳐졌다.그러나 그날,일제 헌병의 총성이 장터를 가르며 터졌다.민중 속에서 항일 유언비어를 퍼뜨렸다는 혐의로무고한 주민이 공개 총살되었고,그 자리는 단숨에 공포의 현장이 되었다.이 사건은 지역 항일운동의 한 단면이자,일제 통치하의 조선 민중이 얼마나 쉽게 죽음 앞에 놓였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사건은 오늘날 거의 알려지지 않은,침묵 속의 항일사건으로 남아 있다.2. 시대적 배경 — 1931년, .. 2025. 8. 1.